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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정보

약천 남구만의 낚시법 묘리(조설釣說)

  • (주)조무사
  • 2019-08-1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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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남구만이 법 운용의 중요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서민 풍모의 인사답게

남구만은 낚시꾼에게서도 그 묘리를 배웠다. 1669년(현종 10) 파직되어 고향에 머물렀던

그는 어느 날 낚시를 하게 되었다. 낚시가 서툴렀던 그는 이윽고 능숙한 객의 도움으로

낚싯대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서야 비로소 고기를 몇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객은 낚싯

대를 넘겨받더니만 고기를 쉼 없이 낚는 것이 아닌가. 같은 낚싯대, 같은 바늘, 같은 미

끼, 같은 자리에서, 바뀐 것은 사람뿐인데 그 차이는 왜인가. 남구만이 그 이치를 설명해

달라 하자, 이어지는 객의 말이 그럴싸했다.

 

법法은 가르킬 수 있지만, 묘妙를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가르칠 수 있다면 묘라고 명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ㆍㆍㆍㆍㆍ공께서 제 방법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정성

과 마음을 다하여 여러 달을 익히고 또 익혀서 터득한다면, 손이 적절하게 나가고 마음도 저

절로 움직일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혹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 ㆍㆍㆍㆍㆍ 공이

하기에 달린 것이지, 저는 어떻게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약천집 藥泉集 》28권, <낚시에대한 글釣說>)

 

무명의 낚시꾼에게서 남구만은 깨달음을 얻었고 스스로 반성했다. 그의 속내는 이런 것

인지 모른다.‘그 도리가 어디 낚시에만 한정될 일인가. 문필가의 붓대에도, 요리사의 손

맛에도 농민의 기술에도 도리는 흐르니, 정성을 다한다면 스스로 경지에 오를 것이다.’

모든 영역이 그러한데 하물며 수없는 욕구와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의 영역에서랴. 부귀공

명에 눈멀기 쉬운 관료가 법의 본래 정신과 운용의 묘리에 도통하려면 얼마나 혹독한 자

기 수련을 겪어야 할까. 그러기에 청산에서 깨우치는 도는 오히려 작을 수 있지만, 시정

에서 깨우치는 도리야말로 대도일 수 있다.』

 

17세기 조선 지식인의 지도[이경구/푸른역사] 216쪽

 

약천집의 원본 조설(釣說) 번역내역

 

경술년(1670, 현종11)에 내가 고향인 결성(潔城)으로 돌아오니, 집 뒤에 작은 못이 있었는바

넓이가 수십 보이고 깊이가 6, 7척이 못 되었는데, 나는 긴 여름날에 할 일이 없으면 번번이

가서 물고기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떼 지어 노는 것을 구경하곤 하였다.

하루는 이웃 사람이 대나무 하나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고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들어

서 나에게 주고 물결 사이에 낚싯줄을 드리우게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서울에 살아서 낚싯

바늘의 길이와 너비와 굽은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저 이웃 사람이

준 것을 좋게 여겨서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다음 날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낚

싯바늘 끝이 너무 굽어 안으로 향하였으니, 물고기가 바늘을 삼키기 쉬우나 뱉기도 어렵지

않다. 반드시 끝을 조금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하므로, 내가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 밖으로 향하게 한 다음 또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한 마리의 물

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다음 날 또 한 손님이 와서 낚싯바늘을 보고 말하기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낚싯바늘 끝이 밖으로 향하기는 하였으나 바늘의 굽은 둘레가 또 너무 넓어서 물고기의 입

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므로, 나는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바늘의 둘레를

좁게 한 다음 또다시 하루 종일 낚싯대를 드리웠으나 겨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다음 날 또 두 손님이 왔으므로 내가 낚싯바늘을 보여 주고 또 그동안의 사연을 말하니, 한

손님이 말하기를 “물고기가 조금 잡히는 것이 당연하다. 낚싯바늘을 눌러서 굽힐 적에는 반

드시 굽힌 곡선의 끝을 짧게 하여 겨우 싸라기 하나를 끼울 만해야 하는데, 이것은 굽힌 곡

선의 끝부분이 너무 길어서 물고기가 삼키려 해도 삼킬 수가 없어서 틀림없이 장차 내뱉게

생겼다.” 하므로, 나는 그 손님으로 하여금 낚싯바늘을 두드려서 뾰족한 부분을 짧게 한 다

음 낚싯대를 한동안 드리웠다. 이에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여러 번 물었으나 낚싯줄을 당겨

들어 올리면 혹 빠져 떨어지곤 하였다.

 

옆의 한 손님이 보고 말하기를 “저 손님의 설명이 낚싯바늘에 대한 말은 맞으나 낚싯줄을

당기는 방법이 빠졌다. 낚싯줄에 찌를 매다는 것은 부침(浮沈)을 일정하게 하여 물고기가 바

늘을 삼켰는지 뱉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 찌가 움직이기만 하고 아직 잠기지 않은 것은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아직 다 삼키지 않았을 때인데 갑자기 낚싯줄을 당겨 올리면 너무 빠

른 것이고, 찌가 잠겼다가 약간 움직이는 것은 바늘을 삼켰다가 다시 뱉을 때인데 천천히 당

기면 이미 늦은 것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잠길락 말락 할 때에 당겨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당겨 올릴 때에도 손을 높이 들고 곧바로 들어 올리면 물고기의 입이 벌어져 있

어서 낚싯바늘 끝이 아직 걸리지 않아 고기가 낚싯바늘을 따라 입을 벌리면 낙엽이 나무에

서 떨어지듯 떨어져 버린다. 이 때문에 반드시 손을 마치 비질하듯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서 들어 올려야 하니, 이렇게 하면 물고기가 막 낚싯바늘을 목구멍으로 삼킨 다음이어서 낚

싯바늘의 갈고리 부분이 목구멍에 걸려 좌우로 요동을 쳐서 반드시 펄떡거릴수록 더욱 단단

히 박힐 것이니, 이 때문에 반드시 잡고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내가 또 그 방법대로 하였더니 낚싯대를 드리운 지 얼마 안 되어 서너 마리의 물고기를 잡

았다. 손님이 말하기를 “법은 여기서 다하였지만 묘리는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하고는 내

낚싯대를 가져다가 스스로 드리우니, 낚싯줄도 나의 낚싯줄이요 낚싯바늘도 나의 낚싯바늘이

요 먹이도 나의 먹이요 앉은 곳도 내가 앉은 자리였으며, 바뀐 것이라고는 단지 낚싯대를 잡

은 손일 뿐인데도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물고기가 마침내 낚싯바늘을 머금고 올라와서 머

리를 나란히 하고 앞을 다투어 올라왔다. 그리하여 낚싯대를 들어 올려 물고기를 잡는 것이

마치 광주리 속에서 집어 소반 위에 올리는 것과 같아서 손을 멈출 새가 없었다.

 

내가 말하기를 “묘리가 이 정도에 이른단 말인가. 이를 또 나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하였더니, 손님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법(法)이니, 묘리를 어찌 말로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만일 가르

쳐 줄 수 있다면 또 이른바 묘리가 아니다. 기어이 말하라고 한다면 한 가지 할 말이 있으니,

그대가 나의 법을 지켜 아침에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에도 낚싯대를 드리워서 온 정신을

쏟고 마음을 다하여 날짜가 쌓이고 달수가 오래되어 익히고 익혀 이루어지면 손이 우선 그

알맞음을 가늠하고 마음이 우선 앎을 터득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혹 묘리를 터득할 수도

있고 터득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혹 그 은미한 것까지 통달하고 지극한 묘리를 다할 수도

있으며, 그중 한 가지만 깨닫고 두세 가지는 모를 수도 있으며, 혹은 하나도 알지 못하여 도

리어 스스로 의혹할 수도 있으며, 혹은 황홀하게 스스로 깨닫되 깨닫게 된 소이(所以)를 자

신도 알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는 모두 그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찌 간여할 수

있겠는가. 내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나는 이에 낚싯대를 던지고 감탄하기를 “손님의 말씀이 참으로 훌륭하다. 이 도를 미루어 나

간다면 어찌 다만 낚시질에 쓸 뿐이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비유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이와 같은 종류가 아니겠는가.” 하였다.

손님이 이미 떠난 뒤에 그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 살피는 바이다.

 

<약천집 제28권>잡저(雜著)조설(釣說)/한국고전번역원

 

조선 후기의 문신인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은 본관은 의령,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이고 조선개국공신 남재의 후손으로 현령 남일성의 아들이다. 관직

은 1651년 진사시에 합격, 1656년 별시문과(을과)에 급제하여 가주서, 정언, 이조정랑, 대

사간, 이조참의, 대사성, 안변부사, 전라도/함경도관찰사, 형조판서, 대제학,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이 되었다. 저서로는 ‘약천집’, ‘주역참동계주’등이 있다.

 

약천은 이조참의로 있다가 파직되어 고향인 결성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낚시꾼과의 대

화에서 심오한 인생 철학을 깨우쳤다. 고기를 낚는 방법을 구경하다 자연히 낚시하는 법

을 배우게 된다. 즉 객은 약천에게 낚시를 하는 방법은 가르쳐 드릴 수 있어도 그 묘리는

스스로 배워서 터득 할 수 있어야 많은 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세상도 마찬가지라 법을 적용하는 이치도 엄격한 법 적용만이 만사가 아니며, 하급

관리들의 부정을 계도하여 스스로 횡령물품들을 창고에 원 위치하여 문제를 해소하였다고

한다. 근본적 문제인 하급관리들의 정기적인 급여를 지급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요즈음 세상도 국민의 대다수가 요구하여도 정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

가 많다. 민심은 천심이라 하였는데 국민이 원하고 바라는 바를 경청하고 들어 주어야 나

라가 올바른 길로 나가는 것이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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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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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꾼 2019-08-23
    잘 보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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